일상다반사

시작하자마자...

Everyday life & us 2020. 4. 24. 21:56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고 계획을 해보던 찰나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3년간 병상에 누워계셨는데...월요일 아침 첫수술에 들어가기 직전 전화를 받았다. 

Arrest 났다고...마음의 준비를 어느정도는 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갑자기 가실 줄은 몰랐는데, 급히 KTX 열차표를 끊고 대전으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열차 안에서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조금 전 임종하셨다고...

그동안의 시간이 주마등 처럼 지나갔다.

 

아버지는 늘 우리에게 산같은 존재였다. 어릴 때는 180cm에 100kg의 풍채가 좋으신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나 크게 느껴졌는데, 정년을 하고 집에 계실때는 조금은 외로워 보이는 느낌이었다. 한번도 우리에게 화를 내신적이 없고, 소파에 쓰러져 자고 있는 아들들을 번쩍 들어서 방에 옮겨주시고, 아침에 눈도 제대로 못뜨는 수험생 아들들을 다리를 주물러주시면서 화 한번 내지 않고 달래서 깨워주시던 그런 분이셨다.

 

3년 전 뇌출혈로 쓰러지시고 나서는 일어나질 못하셨고, 우리병원에서 1년이 넘게 계시다 1년전에 대전의 요양병원으로 옮기셨다. 어머니도 서울에서 간병을 하시는 타지생활을 힘들어하신데다, 간병인을 쓰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다행히 좋은 간병인 아저씨를 만나 1년간 무사히 우리병원생활을 마치고, 요양병원에서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 큰 문제 없이 잘 지내고 계셨는데... 코로나가 퍼져서 여러가지 어수선한 사이에 이렇게 가시다니...참...인생이 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3년여의 투병기간 동안 고생하신 어머니 생각을 하면 아버지는 끝까지 어머니 고생시키는 것도 싫으셔서 그렇게 빨리 가셨나 보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버지는 늘 가족들을 위해 희생하시던 분이었다.

 

아이 넷의 아빠가 되고부턴 새삼 가장의 무게를 느낀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 우리 부부를 위해 쓴 것은 거의 없을 정도로 아이만 위하면서 사는 인생을 살았다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우리네 부모님들이 왜 단벌신사로 사셨는지, 본인들 옷은 하나 안사시면서도 아이들 좋은 옷 좋은 것 먹이겠다고 아끼시며 사셨던 부모님들이 정말 대단하셨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에 비하면 할거 다하고,먹을 거 다 잘 먹고, 전문직으로 살면서 뭐그리 부족하다고 느끼는지, 욕심도 참 많다...

돌아서 생각해보면 어머니는 어떻게 아버지 외벌이로 아들둘을 이렇게 키우고, 집도 사고, 맨바닥에서 이렇게 하신건지 존경스러울 뿐이다.

 

어쨌든 1주간에 걸친 장례와 삼우제가 끝나고, 서류 정리와 답례인사들을 하고 나니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것 같다.

장례를 치르면서도 느낀건 생각보다 많은 동료, 친구,선 후배들이 이렇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다. 졸업 후 연락한번 못하고 지낸 동문 친구들도 많은 위로를 보내주었고 코로나때문에 조문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멀리 서울에서 내려와준 많은 사람들...미처 준비못한 영정사진도 준비해준 고등학교 동문친구와 멀리있던 아들들대신 먼저 달려와주신 이모와 외삼촌들... 정말 고마운 일이 태산이다.

 

표현하는 게 서툴러서 다 마음을 전하기는 어렵지만, 가슴으로 진정으로 모든 사람에게 너무 고마운 마음이다. 잊지 않고 갚으며 살아야겠다.

 

 

각설하고 앞서 이야기했던 새로운 일들을 그사이에 시작했다. 다음부터 하나씩 하나씩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건 참 재밌는 일이다. 어깨의 짐도 덜겸 2nd job도 번창하길...